[감상] The November Man - 너무 많은 토끼를 잡으려했다 TV/영화 얘기


이 영화 예고편을 처음 봤을때 나는 은근히 기대감에 차있었다.   리암 니슨의 <테이큰> 덕분에 유행이 되어버린 노장 스파이물의 주연으로 전직 007 피어스 브로스넌은 모자랄바 없고, 예고편에서 부각시켜준 "스승 vs 제자"의 대립구도도 뭔가 클래시컬한 느낌이 드는게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문제는 스파이스릴러영화에서 볼 수 있는 소위 클래시컬한 요소를 (클리셰 요소라고 읽어도 무방하다) 이것저것 다 우겨넣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스승 vs 제자"의 요소 뿐만 아니라 "은퇴한 노장의 귀환" "스파이세계의 영원한 우정" "스파이세계에선 믿을 놈 하나 없다" "배신과 복수" "스파이는 사랑과 가족을 가질 수 있는가" "현실세계의 분쟁 뒤에 숨은 정치적 음모" 등등, 이런 영화에서 나올만한 테마와 요소는 다 나온다.

그런데 그게 하나의 스토리로 잘 녹아있지 못하고 따로 노는 느낌이다.   잡으려는 토끼가 많다보니 어느 하나 제대로 만족스럽게 표현되지 못했다.   모든 클래시컬/클리셰한 요소들이 다 가장 뻔한 패턴으로 진행되고 만다.   그러니 스토리는 중구난방스럽고, 보는이로서는 몰입도 잘 안되고, 반전은 전혀 반전답지 않고, 클라이막스가 되어도 캐릭터의 갈등이나 위기 같은건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같이 영화 보러갔던 사람은 "스토리에 곁가지가 왜이리 많아"라고 표현하더라.   분명히 가지치기가 필요한 스토리였다.   원작소설도 이런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소설 나름대로 각각의 요소를 충실하게 전개해 나갔겠지.

덕분에 캐릭터들의 행동거지도 상당히 뜬금없이 느껴진다.   저 캐릭터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납득이 안 가는 경우가 여러번 있다.  "이 캐릭터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 여기에 와서 이짓을 하고있다"가 아니라, "지금 작가가 이런 테마를 표현해야 하니까 저 캐릭터가 저기에서 저짓을 하도록 만든다"다.   올가 쿠릴렌코는 덕분에 예쁘게 나오니 용서   역시 본드걸

피어스 브로스넌도 솔직히 좀 아쉬웠다.   스토리상 스파이짓에 찌들어 삐딱해지고 매정한 모습이 좀 나오는데, 그게 007과 레밍턴 스틸을 통해 몸에 밴 -- 또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 쿨하고 스무스+수아브한 평소 모습과 따로 놀았다.   상반된 두 모습을 하나의 캐릭터로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느낌.   앞에 언급한 "뜬금없는 행동거지"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또한 은퇴 이후 세르비아(맞나?)에서 살고있는 전직 CIA요원이라는 설정상 러시아 억양이 살짝 섞인 미국영어를 쓰는거 같았는데, 이게 꽤 어색하고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이건 브로스넌의 트레이드마크격 매끄러운 영국억양에 너무 익숙하기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원채 스토리전개에서 거슬리는게 많았기에 이것저것 다 거슬렸다고 보는게 정확할지도.

결론적으로 정말 아쉬움으로 가득찬 영화였다.   첫 15여분 정도는 진짜 재미있게 봤기에 더욱 그렇다.   연출적으로도 분위기는 제대로 잡은 영화였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뜬금없고 일관성없는 전개에 맥이 빠져버렸다.   스파이스릴러는 역시 스토리가 탄탄해야 하는데 이 영화는 스토리가 최대약점이다.   누가 뭐래도 이건 시나리오의 실패.

해서 점수는 D 준다.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노장 스파이스릴러는 꼭 보고싶었지만 아쉽게도 이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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